Roaming's 26

Hello Roaming 2009. 2. 19. 18:49

1983년 음력 2월 11일

1살    엄마뱃속에서 보름간 버티다가
    "괴물이라도 좋으니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 는 엄마의 바람에 태어나긴했다.
    별로 괴물은 아니었다.

2살    잘 울지 않고, 떼 쓰지 않는 순한 아이였다.
    지금성격으로 미루어 보건데 귀찮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울어봐야 떼써봐야 별로 얻을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3살    동생이 태어났다.
    기뻐서 도저히 밖에 놀러 나갈 수 가 없었다.

4살    계절이란게 있다는것을 지각했다.
    눈사람을 만들었다. 창작의 기쁨!

5살    내 생일날 아침 일어나 '아- 나도 이제 다섯살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생일날 아침에 이불에 쉬-를 해버려서.. 다섯살인데도 쉬-를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글을 읽기 시작했다. 독학도 잘했단다.

6살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까만옷을 입은 아저씨가 뚱뚱한 보따리를 메고 담을 넘어 들어왔다.
    대문이 어디냐고 묻길래-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말했더니 그사람은 도둑놈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7살    동생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개미도 먹이고 머리로 돌도 깨보라고 했다.
    원피스 입힌뒤 자전거 뒤에 태워 동네에 놀러나가기도했다.
    엄마가 동생을 한두명쯤 더 낳아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책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재밌어서 잠도 안왔다.

8살     국민학교에 갔다. 항상 1등이었다.
    세상이 우스워 보였다.
    바른생활 문제를 하나 틀렸다.
    Q : 신호등이 노란불일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A : 재빨리 뛰어간다.
    인생 헛살았나 싶었다. 내상식이 틀리다니..

9살     숙제를 안하기 시작했다.
    숙제가 싫었다.
    암암리에 규칙을 어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세상이 우스웠다.

10살     전학이란 걸 했다.
    여러지역에 친구가 생긴다는 점에서 메리트를 느꼈다.
    전학간 학교친구들이 나의 정확한 성별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11살    태권도에 심취했다.
    상을 한번 타고 나니, 나는 못하는게 없구나 싶었다.
    오빠들은 벌써 남자구나- 싶었다.
    또래 남자친구들은 어린이라서 성에 안찼다.

12살     부모님 지도 아래 술 맛을 알아버렸다.
    기어코 몰래 부모님이 남긴 맥주따위도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했다.
    빨간얼굴을 이불 속에서 식혀야했다.
    학교에서 야근(?) 하기 시작했다.
    집에 가기가 싫었다.

13살     전교회장이 되었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내가 대장 같았다.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어른들은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다 생각했다.
    수면제 15알을 가지고 나타난 친구가 그걸 먹고 죽겠다길래,
    나의 지도 아래 친구들이 15알을 나눠먹었다.
    졸업식은 도대체 졸려서 기억도 안난다.

14살     혼자놀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밥굶기도 즐기기 시작했다.
    죄와벌을 읽었다.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책을 끊어야겠다 생각했다.

15살     깨어있는 시간의 3분의2를 상상의 시간으로 보냈다.
    점점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져 갔다.
    대신 현실이랑 상상의 세계랑 섞이기도 시작했다.

16살    휴지가 죽었다.
    물질적인 상실로 충격이 컸다.
    누구든 내곁에 항상 있어주지는 않을 거라는것을 알았다.
    속은 까맣게 타고 있지만, 여전히 모두에겐 밝고 즐거운 아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진심으로 재미있었다.

17살    부모님의 손을 떠난 삶이 시작되었다.
    자유를 얻은만큼 책임도 따른다는것을 직접적으로 실감하게되었다.
    TV를 끊었다.
    대신 라디오를 들었다.
    하루에 일기를 한바닥 가득씩 쓰곤했다.

18살     사춘기를 심하게 겪기 시작했다.
    삐뚤어지진 않았지만, 내안에 무언가 심하게 뒤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랑 얘기하는것 보다 음악이 좋았다.
    비오는 날엔 혼자 길을 방황했다.
    비관하지 않았다, 즐겼다.
    하루에 일기를 한장 가득씩 쓰곤했다.

19살    내가 만든 세계속에 혼자 살았다.
    올지 안올지 확신할수없는 내일은 필요없었다.
    놀이터에서 노는 동네 꼬맹이(유아)들의 대장이 되었다.
    사람이랑 얘기하는것 보다 사물이랑 얘기하는게 즐거웠다.

20살     어두운 사춘기를 청산하고 파릇한 신입생이 되었다.
    세상 술 다 마셔 없애버릴까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마셔봐도 없어지진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마셔봐도 잘 취하지도 않았다.
    음악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도 만났다.
    나는 우물속에 있었구나.. 싶었다.

21살     밥보다 술보다 음악이 좋았다.
    내 생명의 은인 1호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혼자놀기보다 여럿이서 놀기를 더 즐기기 시작했다.
    직업을 가졌다.
    세상은 만만한게 아니었다.

22살     온갖 나쁘면서 처음겪는 일들, 그리고 안겪어도 될 일들이 닥쳤다.
    시간에 떠밀려 22살을 보낸다.
    한사람을 떠나보내며 한뼘씩 자란다는 대장님 말에,
    영영 자라지 않아도 되니 아무도 안떠났으면 했다.
    그저 계속 어린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23살     머리그래프 높이가 몸의 그래프 높이보다 현저히 낮았다.
    정상이라면 머리그래프와 몸그래프 높이가 같아야된다했다.
    정신적 감기라면, 독감을 앓았다.
    살고 싶어해야 했다.

24살     보따리짐만 싸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나자신과 싸웠다.
    진건 나였다, 하지만 이긴것도 나였다.
    그리고 이제 사이좋게 지내거나 지배하거나 -

25살     자는시간 빼곤 일만했다.
    일, 일, 일, 일...
    25살되면 뭔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무엇도 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정도면 괜찮을것 같았다.
    서투른 감정의 휘두름으로 나도 상대방도 상처를냈다.
    한편으론 많이 컸다 생각하고, 한편으론 아직도 어린아이구나 했다.

26살     --- bla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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